김상태 金尙台

독립유공자 기록 공개 공훈 자료
이름
김상태 (金尙台)
생몰연도
1862–1911
출신지
충청북도 영춘
분류
의병 독립유공자 명단

공적 개요

1. 1896년 문경(聞慶)에서 의병을 일으키고 당시 전국도창의대장(全國都倡義大將)이던 이강년(李康秊)과 형제지의(兄弟之義)를 맺아 그의 중군대장(中軍大將)으로 활약중 호좌사(湖左帥) 유인석(柳麟錫)이 도만(渡滿) 3년만에 귀국함 2. 1905년 동지 정운경(鄭雲慶)과 더부러 제천(堤川)에서 기병하여 각지에서 활동함 3. 1907년 이강년(李康秊) 등과 함께 다시 제천(堤川), 단양(丹陽) 등지에서 의병을 일으켜 순흥(順興), 봉화(奉化), 풍기(豊基), 영춘(永春), 영월(寧越) 등지에서 활약중 1908년 이강년(李康秊)이 피체됨으로써 군사지휘권(軍士指揮權)을 인계(引繼)밭아 소백산맥(小白山脈)을 근거(根據)로 하여 일경(日警) 및 일헌(日憲)과 교전(交戰)하기 무려 50여회에 달(達)함 4. 1909년 3월 단양군내(丹陽郡內) 순사 주재소(巡査駐在所)를 습격(襲擊)하여 순사(巡査) 2명(名)을 사살(射殺)함 5. 1911년 5월 종사(從事) 우중수(禹中守)의 간계(奸計)로 순흥(順興)의 남목리(南木里)에서 피체(被逮)되어 대구경찰서(大邱警察署)로 압송(押送)됨 6. 1912년 3차(三次)에 걸친 신문(訊問) 끝에 삼년(三年)의 선고(宣告)를 받자 그는 의분(義憤)을 참지 못하여 순사(巡査)의 칼을 빼어 치려고 했으나 이루지 못하고 이날부터 폐구불식(閉口不食)으로 날을 보내니 일인(日人)이 기계(機械)로서 입을 비집고 음식(飮食)을 먹일려고 했으나 이루지 못하고 절식(絶食) 13일인 7월 28일에 옥중(獄中)에서 사망(死亡)함

공식 결정·수록 여부

국가보훈 공개 공훈 자료 확인 (건국훈장 독립장, 1963년 서훈)

자료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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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출신 독립유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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