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태 金尙台
공적 개요
1. 1896년 문경(聞慶)에서 의병을 일으키고 당시 전국도창의대장(全國都倡義大將)이던 이강년(李康秊)과 형제지의(兄弟之義)를 맺아 그의 중군대장(中軍大將)으로 활약중 호좌사(湖左帥) 유인석(柳麟錫)이 도만(渡滿) 3년만에 귀국함 2. 1905년 동지 정운경(鄭雲慶)과 더부러 제천(堤川)에서 기병하여 각지에서 활동함 3. 1907년 이강년(李康秊) 등과 함께 다시 제천(堤川), 단양(丹陽) 등지에서 의병을 일으켜 순흥(順興), 봉화(奉化), 풍기(豊基), 영춘(永春), 영월(寧越) 등지에서 활약중 1908년 이강년(李康秊)이 피체됨으로써 군사지휘권(軍士指揮權)을 인계(引繼)밭아 소백산맥(小白山脈)을 근거(根據)로 하여 일경(日警) 및 일헌(日憲)과 교전(交戰)하기 무려 50여회에 달(達)함 4. 1909년 3월 단양군내(丹陽郡內) 순사 주재소(巡査駐在所)를 습격(襲擊)하여 순사(巡査) 2명(名)을 사살(射殺)함 5. 1911년 5월 종사(從事) 우중수(禹中守)의 간계(奸計)로 순흥(順興)의 남목리(南木里)에서 피체(被逮)되어 대구경찰서(大邱警察署)로 압송(押送)됨 6. 1912년 3차(三次)에 걸친 신문(訊問) 끝에 삼년(三年)의 선고(宣告)를 받자 그는 의분(義憤)을 참지 못하여 순사(巡査)의 칼을 빼어 치려고 했으나 이루지 못하고 이날부터 폐구불식(閉口不食)으로 날을 보내니 일인(日人)이 기계(機械)로서 입을 비집고 음식(飮食)을 먹일려고 했으나 이루지 못하고 절식(絶食) 13일인 7월 28일에 옥중(獄中)에서 사망(死亡)함
공식 결정·수록 여부
국가보훈 공개 공훈 자료 확인 (건국훈장 독립장, 1963년 서훈)
자료 출처
국가보훈 관련 공개 공훈 자료 · 전체 자료 출처
충청북도 출신 독립유공자
- 김명진 (金明鎭)1887–?
- 김목여 (金木汝)1871–?
- 김복진 (金復鎭)1901–1940
- 김상옥 (金相玉)1880–?
- 김상준 (金相俊)1887–?
- 김상한 (金商翰)1842–1917
- 김성관 (金聖寬)1864–1907
- 김성권 (金成權)1870–?
- 김성환 (金成煥)1875–1958
- 김성흥 (金聖興)1870–1909
의병 계열 · 1963년 서훈 독립유공자
- 고제량 (高濟亮)1849–1907
- 권용일 (權用佾)1884–1971
- 김복한 (金福漢)1860–1924
- 김원국 (金元國)1870–1910
- 문태수 (文泰洙)1880–1913
- 박연백 (朴淵伯)1869–1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