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국 金元國
공적 개요
1. 1905년 9월 전남(全南) 광산(光山) 송정읍(松汀邑)에서 왜병타살 후 피신함. 2. 1906년 3월 실(實) 제(弟) 김원범(金元範)과 함께 광주시(光州市) 교외 무등촌(無等村)에서 의병을 일으켜 일병과 교전. 3. 1907년 12월 김태원(金泰元)과 합세하여 부하 300여명으로 일 광주(光州) 수비대와 교전, 일병 40여명을 사살함. 4. 1908년 4월 9일 함평군(咸平郡)의 적양면(赤良面), 여황면(艅艎面), 오산면(鰲山面) 등을 근거지로 하여 왜병과 교전 중 광주(光州) 교외에서 소위 삼국대장이라고 하던 길전(吉田)을 사살함. 5. 1909년 3월 장성군(長城郡) 남일면(南一面)에서 부하 150명으로 왜적과 교전. 3월 18일 부하 80명으로 왜적과 나주에서 교전. 5월 19일 불갑산(佛甲山)에서 왜적과 교전. 6일 광주(光州) 우산면(牛山面)에서 왜군과 교전중 피체(被逮)되어 목포(木浦)로 호송 도중(護送途中) 왜병을 타살(打殺)하고 함평군하(咸平郡下) 먹굴산으로 피신(避身)함.(6월 11일) 6. 1909년 6월 이후 조경환(曺京煥)의 선봉장(先鋒將)으로서 활약했으나 조경(曺京)의 전사(戰死)로 말미암아 그의 군사(軍士)를 인계(引繼)받아 스스로 의병대장(義兵大將)이 되고 곽진일(郭鎭一)을 선봉장(先鋒將), 오덕신(吳德信)을 중군장(中軍將), 김재연(金在淵)을 후군장(後軍將)으로 하여 의병(義兵) 500여명으로 광주(光州), 나주(羅州), 능주(綾州), 동복(同福), 창평(昌平), 담양(潭陽), 장성(長城), 영광(靈光) 등지에서 활동을 계속함. 7. 1909년 12월 5일 영광 불갑산(佛甲山)으로 이동중 왜군과 교전, 여기에서 피체(被逮)되어 광주 감옥(光州監獄)으로 호송(護送), 다시 대구감옥(大邱監獄)으로 이송되어 총살(銃殺)당함.
공식 결정·수록 여부
국가보훈 공개 공훈 자료 확인 (건국훈장 독립장, 1963년 서훈)
자료 출처
국가보훈 관련 공개 공훈 자료 · 전체 자료 출처
전라남도 광주 출신 독립유공자
- 김상원 (金相元)1902–?
- 김안진 (金安鎭)1913–?
- 김양순 (金兩順)1903–?
- 김용규 (金容圭)1898–1924
- 김용준 (金容俊)1910–1995
- 김원범 (金元範)1886–1909
- 김유성 (金有聲)1895–1950
- 김이현 (金利鉉)1920–2006
- 김자술 (金子述)1876–?
- 김장수 (金長洙)1901–?
의병 계열 · 1963년 서훈 독립유공자
- 권용일 (權用佾)1884–1971
- 김복한 (金福漢)1860–1924
- 김상태 (金尙台)1862–1911
- 문태수 (文泰洙)1880–1913
- 박연백 (朴淵伯)1869–1909
- 백남규 (白南奎)1884–19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