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조 高奉朝
독립유공자 기록
공개 공훈 자료
공적 개요
1940.4월중순(月中旬) 일국(日國) 대판(大阪)에서 일본대학(日本大學) 전문부(專門部) 특과 야간생(特科夜間生)으로 재학(在學)하면서 금성(金城)열쇠제작소(製作所)에 취업중(就業中) 김봉각(金奉珏)으로부터「조선청년(朝鮮靑年)의 갈 길은 다만 하나뿐이다. 민족(民族)의 해방(解放)을 위하여 헌신(獻身)할 길뿐이다」라는 주장(主張)에 공명(共鳴)하고 흥아연구회원(興亞硏究會員)이 되어 동지적(同志的) 맹약(盟約)을 다짐하다가 조선독립운동(朝鮮獨立運動)의 중핵적(中核的) 모체(母體)를 결성(結成)하고자 계림동지회(鷄林同志會)를 비밀 결사(秘密結社)하여 활동(活動)하다가 피체(被逮)되어 징역 1년6월 3년간(年間) 집행유예(執行猶豫)를 받았으나 1년 8월 23일간의 옥고(獄苦)를 치른 사실이 확인됨.
공식 결정·수록 여부
국가보훈 공개 공훈 자료 확인 (건국훈장 애족장, 1992년 서훈)
자료 출처
국가보훈 관련 공개 공훈 자료 · 전체 자료 출처
제주도 제주 출신 독립유공자
- 강태하 (姜太河)1897–1967
- 강평국 (姜平國)1900–1933
- 고경수 (高京守)1916–1935
- 고담룡 (高湛龍)1915–1989
- 고병희 (高秉禧)1900–1964
- 고사만 (高仕萬)1908–1962
- 고사훈 (高仕訓)1871–1909
- 고수선 (高守善)1898–1989
- 고연홍 (高蓮紅)1903–?
- 고영호 (高瀛豪)1920–2004
일본방면 계열 · 1992년 서훈 독립유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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