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찬 金容瓚
독립유공자 기록
공개 공훈 자료
공적 개요
1929. 12월 광주학생 사건(光州學生事件)의 연루자로 피체(被逮)되어 옥고(獄苦)를 치른 후 영동으로 돌아와 1930. 9월 영동농민조합(永同農民組合)에 가입하고 1931. 2월부터 4월사이 김태수(金台洙), 손순흥(孫順興) 등과 함께 적우동맹을 조직, 정치 경제부장을 맡아 활동(活動)하다가 피체(被逮)되어 징역 2년 6월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공식 결정·수록 여부
국가보훈 공개 공훈 자료 확인 (건국훈장 애족장, 1995년 서훈)
자료 출처
국가보훈 관련 공개 공훈 자료 · 전체 자료 출처
충청북도 영동 출신 독립유공자
- 김복진 (金復鎭)1901–1940
- 김수원 (金壽遠)1882–1936
- 김순철 (金舜哲)1892–1939
- 김승림 (金升林)1891–1952
- 김용선 (金容善)1895–1963
- 김태규 (金泰奎)1895–1974
- 김태수 (金台洙)1904–1950
- 김평근 (金平根)1870–1924
- 김흥서 (金興西)1870–?
- 남도학 (南道學)1900–1969
국내항일 계열 · 1995년 서훈 독립유공자
같은 성씨와 본관이라는 사실만으로 해당 인물이 나의 직계 조상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본 서비스는 공개된 역사 자료를 검색하기 쉽게 정리한 서비스입니다. 검색 기준 자세히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