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영 李春永
공적 개요
1. 1895년 을미왜변(乙未倭變)에 분개하여 그의 친구인 안승우(安承禹)와 함께 원주(原州) 안창리(安昌里)에서 의병을 일으켜 부하 김백선(金伯善) 등과 더불어 의병 400여명을 얻고 원주(原州)를 점령하기 수일에 제천으로 향함.이곳에서 제천군수 김익진(金益珍)과 단양군수(丹陽郡守) 권숙(權潚) 청풍군수(淸風郡守) 서상기(徐相夔), 충주시찰사(忠州視察使) 김규식(金奎軾) 등을 사로 잡으니 권숙(權潚)의 아들이 왜병 수백을 청하여 단양(丹陽)의 장회(長滙)에서 싸움을 걸어왔으나 이를 크게 격파(擊破)함. 맹영재(孟在英) 이민옥 등(李敏玉等)의 배신(背信)으로 한때 곤경(困境)에 빠졌으나 이춘영이 다시 이를 수습(收拾)하고 유인석(柳麟錫)을 대장(大將)으로 추대(推戴)하고 그는 스스로 중군(中軍)이 되어 군대(軍隊)는 충주(忠州)로 옮김.춘영(春永)은 호남(湖南)과 영남(嶺南)의 요액(要扼)인 조령(鳥嶺)을 지키던 중 그의 파수장(把守將) 홍대석(洪大錫)이 조령(鳥嶺)밑에 있는 안보(安保)의 왜참(倭站)을 습격하여 이를 크게 대파하자 춘영(春永)이 이를 쫓아 수백의 의병(義兵)을 거느리고 달천(達川)으로 갔으나 적이 패주(敗走)하고 없으므로 다시 안보(安保)로 와서 왜적(倭敵)과 싸우다가 전사(戰死)함. (1896년 정월)(기려수필(騎驢隨筆) p30,31 항일순국의열사전(抗日殉國義烈士傳) p308 한국독립운동사(韓國獨立運動史) p23,p45)
공식 결정·수록 여부
국가보훈 공개 공훈 자료 확인 (건국훈장 독립장, 1963년 서훈)
자료 출처
국가보훈 관련 공개 공훈 자료 · 전체 자료 출처
경기도 양평 출신 독립유공자
- 곽영준 (郭英俊)1899–1932
- 김경성 (金慶星)1888–1950
- 여준현 (呂駿鉉)1876–1950
- 윤기영 (尹璣榮)1871–1941
- 윤영섭 (尹寧燮)1911–1949
- 이보원 (李輔元)1870–1949
- 이연년 (李延年)1874–1944
- 이탁 (李鐸)1898–1967
- 한덕리 (韓悳履)1871–1939
- 홍재하 (洪在厦)1892–1960
의병 계열 · 1963년 서훈 독립유공자
- 서상렬 (徐相烈)1856–1896
- 안규홍 (安圭洪)1879–1910
- 이명상 (李明相)?–1909
- 이한구 (李韓久)1870–1907
- 정환직 (鄭煥直)1844–1907
- 한봉수 (韓鳳洙)1883–19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