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중 金龍中
독립유공자 기록
공개 공훈 자료
공적 개요
1940. 12. 29 대한인(大韓人) 국민회(國民會) 제5차 대표 대회에 참석하여 중앙상무위원회 선전위원으로 선임되어 활동하던 중 1942년 1월 재미한족연합회 집행부 선전과 과장이 되어 특파원으로 주미외교위원부 당국과 전시동포안녕보장을 협의하기 위하여 워싱톤으로 가서 동정을 관찰, 보고하고 동년(同年) 9월에는 할리우드 라디오 방송에서 임정승인과 무기지원 요청에 관한 방송연설을 했고 1943년 한국문제연구소를 창립, 기관지 『한국의 소리』를 발간, 각국의 정책담당자들과 한국독립에 관한 의견을 교환하였으며 그외 1919년부터 1943년까지 수십차례에 걸쳐 독립금을 헌납하는 등의 사실이 확인됨
공식 결정·수록 여부
국가보훈 공개 공훈 자료 확인 (건국훈장 애족장, 2000년 서훈)
자료 출처
국가보훈 관련 공개 공훈 자료 · 전체 자료 출처
충청남도 금산 출신 독립유공자
- 김부개 (金富介)1881–?
- 김부대 (金富大)1905–1953
- 김성학 (金聖學)1920–1945
- 김영곤 (金榮坤)1925–1992
- 김영호 (金永浩)1881–1941
- 김일남 (金一南)1888–1950
- 김종구 (金鍾九)1894–1963
- 김주한 (金周漢)1882–1959
- 김진철 (金鎭哲)1848–1909
- 김태선 (金泰善)1924–2003
미주방면 계열 독립유공자
같은 성씨와 본관이라는 사실만으로 해당 인물이 나의 직계 조상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본 서비스는 공개된 역사 자료를 검색하기 쉽게 정리한 서비스입니다. 검색 기준 자세히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