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구 金容球

독립유공자 기록 공개 공훈 자료
이름
김용구 (金容球)
생몰연도
1861–1918
출신지
전라남도 영광
분류
의병 독립유공자 명단

공적 개요

1. 1907. 8. 8 한문수학 중 의병을 일으킬 것을 모의하고 약 100여명을 모집하여 영광읍(靈光邑)에서 교전2. 1907. 9. 6 왜병 20명과 연곡촌(蓮谷村)에서 교전3. 1907. 10. 5 장성(長城) 월평리(月坪里)에서 왜병과 교전 (후은(後隱) 김(金)선생 신담록(薪膽錄))4. 1907. 12. 30 이외에 장성(長城), 함평(咸平), 영광(靈光), 고창(高敞) 등지로 다니며 수십차 일군과 교전(交戰)하였음 (후은(後隱) 김(金)선생 신담록(薪膽錄)) (순국의열사전 p268)5. 1908. 1. 3 의병대장으로 의병을 인솔하고 영광(靈光) 지방으로 도라다니다가 김태원(金泰元) 부대와 합류하여 약 400여명의 병력으로 확대되어 나주읍(羅州邑)을 습격하여 약 8시간의 교전 끝에 순사를 살해코 무기고를 점령 무기를 탈취하였음 (폭도편책(暴徒編冊) 광비발(光秘發) 제12호)6. 1908. 2. 24 맹주(盟主) 기삼연(奇參衍)의 도통령(都統領)으로 부하(部下) 약(約) 150명(名)을 인솔(引率)하고 영광 방면(靈光方面)에서 누차(累次) 교전(交戰)하였음(폭도편책(暴徒編冊) 광비발(光秘發) 제15호(號))7. 1908. 3. 12 기삼연(奇參衍) 부대(部隊)의 일책임대장(一責任大將)으로서 약(約)100명(名)을 인솔(引率)하고 잠복 중 일진회(一進會)의 밀고(密告)로 토벌온 일경(日警)들과 교전(交戰)하였으나 패퇴(敗退)하였음8. 1908. 3. 15 3월 2일 교전(交戰)중 부상(負傷)으로 민가(民家)에서 은신 치료(隱身治療) 중 일경(日警)들의 폭도수괴 수사 포획망(暴徒首魁搜査捕獲網)에서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탈출(脫出) 피신(避身)하였음(폭도편책(暴徒編冊) 광비발(光秘發) 제236호(號))9. 1908. 5. 1 이후(以後) 총상(銃傷)으로 인(因)하여 무력(武力)활동이 불능(不能)케되자 동지(同志)들의 항쟁 의식(抗爭意識)을 고취시키며 각지(各地)를 다니다가 일경(日警)의 심(甚)한 수색을 피(避)하여 산중(山中)으로 피신(避身)10. 1918. 12. 26 고종(高宗) 승하비보(昇遐悲報)를 듣고 비통(悲痛) 끝에 자결 순국(自決殉國)하다

공식 결정·수록 여부

국가보훈 공개 공훈 자료 확인 (건국훈장 독립장, 1968년 서훈)

자료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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