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식 金元植

독립유공자 기록 공개 공훈 자료
이름
김원식 (金元植)
생몰연도
1889–1940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
분류
만주방면 독립유공자 명단

공적 개요

1. 1919 봉천성(奉天省) 망명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가입 2. 1919 안동(安東)지방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도만(渡滿)하여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서 군자금 모집 교포 및 동지의 원호에 전력 하였음. 3. 1921 독변(督辨) 이상룡(李相龍)의 지령을 휴대하고 잠입국 경도(京都) 각지에 연락 군자금 모집 다시 중국으로 방대 4. 1922 일 주구기관 숙청 대열(日走拘機關肅淸隊列)의 중심 참모로 활약.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에 가입하여 동북면(東北面) 군사연락위원(軍事連絡委員)으로 북경(北京)에 주재하여 활약하였음. 5. 통의부(統義府), 참의부(參議府), 군정서(軍政署)를 통합 정의부(正義府) 조직할 때 김동삼(金東三), 오동진(吳東振), 현익철(玄益哲), 이청천(李靑天), 김상덕(金相德), 이규사(李圭四)와 같이 중앙집행위원(中央執行委員)에 병출(항일순국의열사전(抗日殉國義烈士傳) p.279) 6. 1922년 임정(臨政) 지령으로 이규사(李圭四)와 같이 동북군사연락위원(東北軍事連絡委員)으로 북경(北京)에 상주하여 60여명의 학생을 남경(南京) 등지에 유학시킴. 7. 중국군 참모장(中國軍參謀長) 희흡(熙洽)과 군사동맹 체결시 72명 한국측 대표 병출. 8. 만주사변(滿洲事變) 후 동북군사위원(東北軍事委員)으로 활동 중 밀고로 피체 간도형무소(間島刑務所)에서 2년간 예심에 회부. 국내에 이감되어 다시 길림(吉林)에 추방 당함. 9. 1927년 농민호조소(農民互助所)를 발기 설립하여 활약(무운사(武運史) p.144) 10. 1928 삼부(三府) 합작시 정의부(正義府) 대표로 김동삼(金東三)과 같이 통합에 진력하다. 11. 만주 사변후 동북군사위원(東北軍事委員)으로 활동 중 밀고로 일경에 피체되어 간도(間島)의 형무소에서 2년간 예심 끝에 국내로 이감되어 옥고를 겪다가 석방 후 길림(吉林)에 와서 계속 활동하다가 길림성(吉林省) 강동촌(江東村)에서 독사(毒死)하였다.(항일순국의열사전(抗日殉國義烈士傳) p.279)

공식 결정·수록 여부

국가보훈 공개 공훈 자료 확인 (건국훈장 독립장, 1968년 서훈)

자료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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