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찬 金奎燦

독립유공자 기록 공개 공훈 자료
이름
김규찬 (金奎燦)
생몰연도
1872–?
출신지
미상
분류
만주방면 독립유공자 명단

공적 개요

1918년 경 중국(中國) 길림성(吉林省) 화룡현(和龍縣) 소재 명동학교(明東學校) 교사(敎師)로 근무하고, 1919∼1921년 연길현(延吉縣) 춘양향(春陽鄕) 합마당(蛤蟆塘)에 본부를 둔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 고문(顧問),재무(財務),참모(參謀),총무(總務),참사(參事),통신부장(通信部長)로 지회 조직, 회원 및 자금 모집에 참여하였으며, 1920년 1월 경 간도청년단(間島靑年團) 편집부장(編輯部長)으로 활동하고, 동년 5월 북간도(北間島) 소재 독립운동단체의 통일을 위한 ‘‘재북간도각기관협의회(‘在北間島各機關協議會) 서약서(誓約書)’에 국민회(國民會) 대표(代表)로 서명하였으며, 9월 연길현(延吉縣) 대감자(大坎子) 북촌(北村)에서 국민회(國民會)와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간의 평화회의에 국민회(國民會) 대표위원(代表委員)으로 참석하고, 10월 국민회(國民會)와 대한의민회(大韓義民會)의 통합조직인 남부(南部) 독판부(督辦府) 참사(參事)에 임명되었으며, 1921년 1월 만주(滿洲),노령(露領)지역 독립군간의 상호 연락을 위해 설립된 통신부(通信部)의 총무(總務)에 임명되고, 동년 2월 안무(安武) 등과 국민회(國民會) 군대를 이끌고 노령(露領) 아무르주(州) 자유시(自由市)에 도착하였으며, 1922년 국민대표회의(國民代表會議)의 길림성(吉林省) 대표자(代表者)로 임명되고, 동년 7월 노령(露領) 송전관(松田關)에서 러시아,중국 국경지대 독립운동단체의 협력을 위한 시행위원회(施行委員會) 비서원(秘書員), 10월 경 노령(露領) 치타에서 고려혁명군정총본부(高麗革命軍政總本部) 군정위원(軍政委員)에 임명된 사실이 확인됨.

공식 결정·수록 여부

국가보훈 공개 공훈 자료 확인 (건국훈장 애족장, 2012년 서훈)

자료 출처

국가보훈 관련 공개 공훈 자료 · 전체 자료 출처

→ 친일파 스캐너에서 '김규찬' 검색하기

만주방면 계열 · 2012년 서훈 독립유공자

같은 성씨와 본관이라는 사실만으로 해당 인물이 나의 직계 조상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본 서비스는 공개된 역사 자료를 검색하기 쉽게 정리한 서비스입니다. 검색 기준 자세히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