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념 金敬念

독립유공자 기록 공개 공훈 자료
이름
김경념 (金敬念)
생몰연도
1872–1950
출신지
평안북도 용천
분류
임시정부 독립유공자 명단

공적 개요

1. 1904년 보호조약을 앞둔 국가(國家)의 위기(危機)를 염려하는 애국 애족사상(愛國愛族思想)에서 신진교육(新進敎育)과 문맹 퇴치(文盲退治)에 주력(主力) 2. 1905~1916까지는 각지에 옥성(玉成), 흥명(興明), 오봉(五鳳) 등의 학교(學校)를 설립(設立)하고 청년(靑年)을 모집(募集) 항일투쟁 의식(抗日鬪爭意識)을 함양시키므로 이들로 하여금 구국항일투쟁(救國抗日鬪爭)에 참여토록 하다 3. 1917 이후(以後) 이승훈(李昇熏) 등 제씨(諸氏)와 또는 서북학회(西北學會), 재일유학생회(在日留學生會)와 모의(謀議) 기회(機會)를 기다리다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동지(同志) 함일형(咸一亨) 등과 각처(各處)에서 거사(擧事)를 선동 주선하고 계속하여 독립신문(獨立新聞)을 등사하여 상해임정(上海臨政)과 남북만주(南北滿洲) 및 평남북도(平南北道)에 배포(配布) 동년(同年) 4월 초순경(初旬頃) 연(烟)□산장(山庄)에 애국지사(愛國志士)들의 밀회연락처(密會連絡處)로 삼고 국내 유지(國內有志)를 안내 만주(滿洲) 상해(上海)등지로 도피시킴. 이 혐의로 삼부자(三父子)가 평양(平壤)감옥에서 6개월(個月)의 혹형(酷刑)을 당함 4. 1920. 1 임정(臨政)에서 김경념(金敬念)을 용천군(龍川郡) 참사(參事)에 임명(任命) 문하생(門下生)인 청년(靑年)들로 하여금 항일운동(抗日運動)에 참가(參加)케 하고 기타(其他) 항일행동(抗日行動)으로 수차의 검거를 받고 태형(笞刑)을 당하고 군자금(軍資金)거출 상해임정(上海臨政)에 송금(送金)(조선민족운동연감(朝鮮民族運動年鑑) p.103, 한국독립운동사(韓國獨立運動史) p.192) 5. 1923 선천군(宣川郡) 신성학교(信聖學校)와 보성학교(保聖學校) 훈육선생(訓育先生)으로 애국 사상(愛國思想) 고취.(대한민국독립사(大韓民國獨立史) 라는 저서 유(著書有)함)

공식 결정·수록 여부

국가보훈 공개 공훈 자료 확인 (건국훈장 애족장, 1990년 서훈)

자료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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