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원성 方遠成
독립유공자 기록
공개 공훈 자료
공적 개요
1919년 3.1 운동(運動)이 일어나자 일본의 고오베신학교를 중퇴하고 만주로 망명 후 간도(間島) 용정촌(龍井村)에서 맹호단(猛虎團)의 참모 등으로 활동 중 피체(被逮)되어 징역 2년 6월을 받았고 1921년 동경(東京) 유학생들이 워싱턴의 태평양회의를 기회로 결의문과 선언서를 발표할 때 이에 동참하고 이를 임시정부(臨時政府)에 전달하기 위하여 상해(上海)로 파송된 후 1922년 국민대표회주비회(國民代表會籌備會) 개최를 촉구하는 선언서 반포에 참가하고, 국민대표회(國民代表會)가 개최되자 교육위원(敎育委員)에 선임되고 건설파(建設派)의 간부로서도 활동하였으며 1924년에는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의 후보(候補) 국민위원(國民委員)으로 당선되었으나 1924. 6. 3 심장병으로 상해(上海)에서 병사(病死)한 사실이 확인됨.
공식 결정·수록 여부
국가보훈 공개 공훈 자료 확인 (건국훈장 애국장, 1995년 서훈)
자료 출처
국가보훈 관련 공개 공훈 자료 · 전체 자료 출처
함경북도 성진 출신 독립유공자
- 김순문 (金舜文)1880–1920
- 김승락 (金承洛)1858–?
- 김영진 (金英鎭)1900–?
- 류훈상 (柳勳相)1884–?
- 박봉일 (朴鳳日)?–1934
- 서유봉 (徐有奉)1901–?
- 서유진 (徐有珍)1897–1935
- 서재영 (徐在英)1877–?
- 안재식 (安載植)1883–?
- 엄주필 (嚴柱弼)1871–1920
만주방면 계열 · 1995년 서훈 독립유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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